08-13
책 리뷰 | 우에노 치즈코 <결혼제국>, 비혼주의자가 늘어나는 이유? 여성, 사랑, 그리고 결혼

우에노 치즈코·노부타 사요코 지음 | 정선철 옮김


사랑해서 결혼하고, 결혼해서 섹스를 한다는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더더욱. 섹스를 하는 데 결혼은 물론이요, 사랑조차 필요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제도도 변했다. 간통을 처벌하던 형법이 위헌 판결을 받고 오늘날 불륜은 형사 소송의 대상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결혼과 성, 사랑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심해질 수밖에….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글 이준기 기자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2년 9월에 있었던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의 대담을 다듬은 것이다. 저자는 당시 일본의 30대 여성들이라는 ‘특수한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 세대의 첫 번째 특징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 <1> 이 제정된 뒤 사회에 진출한 세대로 성평등의식을 당연한 것처럼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단한 ‘남성사회’의 벽에 부딪혀 ‘유리천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제도는 변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들 중 대다수는 파견이나 파트타임 근무로 내몰렸으며 승진에도 한계가 있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징은, 머릿속으로는 보수적인 성규범을 따르지만 행동은 그와 다르거나, 내심 성적 일탈을 꿈꾸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에 대한 의식과 행동이 모순된다는 점이다. 성의식과 성행동 모두 보수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30대 이후 세대와 성의식과 성행동 모두 진보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30대 이전 세대와 달리, 당시의 30대는 두 가지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성혁명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세대였던 것.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모순의 덫에 걸려 허덕이면서 자신의 딸 세대까지 덫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어떤 사람 때문에 계속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 자체가, 실은 피해·가해 구조를 존속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셈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은 17년 전 일본의 현실과 어떻게,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할까?


<1> 일본의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제정된 것은 1986년, 우리나라의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것은 그 다음해인 1987년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운동장은 평평한 운동장과 달리 한쪽 골대 방향으로 운동장이 기울어진 상태를 말한다. 여성이 처한 사회 현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성별에 따른 불공평한 상황 또는 규칙, 체계적 편향을 뜻한다. 책에서는 이 주제가 나중에 나오지만, 책 전반은 남성중심사회의 부당함을 전제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 부당함의 일부나마 먼저 짚고 넘어가자.
가정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대부분 남자고 피해자는 대부분 여자다. 그들은 상대방을 소유·통제하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데, 그들의 행동이 ‘진짜 문제’가 되기 전까지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딸이나 부인에게 성폭력을 저질러놓고 자신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귀여워서, 사랑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그들에게 있어서 소유와 통제·지배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폭력임은 자명하다.
역사적으로 불륜은 거의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식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여전히 남성의 불륜은 가벼운 것으로, 여성의 불륜은 무거운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자가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륜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용인한다는 뜻인데 왜 불륜에 대한 사회적 탄압은 예전보다 심해졌을까?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륜에 대한 금기는 누구에게 유리할까?





유일무이 로맨스




불륜을 저지르고 폭행당하거나 살인을 당한 사람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는 ‘그럴 만했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그 댓글에 수많은 사람이 공감을 누른다. 당한 사람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반응은 비슷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절을 강요하는 일은 남과 여 중 어느 성별에게 불리할까?
이런 사회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들은 이혼과 위자료를 걱정하겠지만 아내들은 폭행과 살인의 위협을 걱정한다. 성별에 따른 힘의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체 정절이 뭐길래 누군가의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젊은 사람들이 하나뿐인 관계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성규범의 붕괴에 따른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성이 표준화되고, 우발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더 쉬워지자 반대급부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뿐인 관계’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가벼운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자 동시에 누구라도 좋으니 어떤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는 나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하나뿐인 관계라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 중 일부는 ‘상대방이 자신을 소유하려 드는 것’, 그리고 그 반대로 ‘자신이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여긴다. 그러니 결혼은 그들에게 당연한 사랑의 종착지가 된 셈이다.
그런데 과연 자기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감정 변화를 연애 혹은 결혼이라는 관계로 묶어둘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사고방식이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남성의 욕망에 면죄부를 주고 여성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여성에게 결혼이란?





전통적인 부부 사이의 역할분담은 여성에게 불리하다. 사회는 그 불합리한 전통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오늘날에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성은 오랜 기간 동안 취업이 쉽지 않았다. 어쩌다 일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좋은 근무조건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간혹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승진이 어려웠다. 결혼을 하면 출산과 육아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다는 이유였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앞둔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도 빈번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보다 일을 하고 싶은 여성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겐 제대로 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여성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결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여성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는 부족할 것 없는 남성들이 결혼을 원하는 이유와 달랐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할까?
사정이 이런데, 왜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제정된 뒤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결혼을 선택할까? 한 가지 이유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제정된 뒤에도 대부분의 사회 제도가 결혼제도를 지키는 쪽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결혼제도를 지키는 편이 개인에게 훨씬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하나뿐인 관계라는 환상’도 한몫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책에선 그것을 ‘젠더병’이라고 칭한다. “적어도 한 명의 남자에게 선택된 여자”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일종의 훈장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결혼을 택하는 여자가 많다는 것. 선택받지 못했다는 결핍감은 아무리 애인이 많고 섹스를 많이 한들, 또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좋은 직장을 다닌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결혼한 친구나 직장 동료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그들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던 것이다.





결혼의 공동화(空洞化)





세월이 흐르면서 삼위일체처럼 여겨지던 결혼과 섹스, 사랑이 분리됐고 이전에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일들이 차츰 현실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서로 사랑하지도 않고 섹스도 안 하는 경우, 혼인을 유지하고 가끔 섹스도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혼인을 유지하지만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 경우, 혼인을 유지하고 같이 살지만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속 빈 강정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그중 일부는 부부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원인을 서로에게서 찾으며 상대방을 탓했지만, 사실 그들의 결혼생활이 텅 비어버린 가장 큰 원인은 결혼제도 그 자체에 있었다. 노부타 사요코는 대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결혼은 제도라고 생각해요. 제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제도 속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바로 결혼이죠. 젊은 혈기로 발을 들여놓고 말았는데, 그게 제도였던 겁니다. 그리고 제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제도를 부수는 편이 좋을까 부수지 않는 편이 좋을까 생각하죠.

결혼제도는 쉽게 변하는 마음을 억지로 묶어놓기 위한 울타리일 뿐이다. 그 울타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닳아지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숴버릴 수도 있다. 울타리에 가까스로 사랑과 섹스를 묶어놓았지만 변하는 마음까지 묶어둘 수는 없다.





이혼하지 않는 이유





독특한 것은 결혼의 공동화가 지속되면 이혼율이나 혼외 자녀 출생률 등 눈에 보이는 지표가 상승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복감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이혼을 선택하지 않고 결혼의 공동화를 견디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부부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애초에 사랑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나 자존심 때문에 결혼을 택한 사람들이 결혼이 하나의 제도고 무를 수 있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 이혼을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껍데기만 남은 결혼생활일지라도 그것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혼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2>
결혼 문제로 상담하러 온 여자들을 예로 들며 노부타 사요코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여자들은 남편과 헤어지면 자신이 사회에서 밀려나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의사이거나, 변호사이거나, 몇 억 엔의 예금이 있다고 해도 결혼제도에서 내려오는 순간 자신이 그저 그런 한 명의 중년 여자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래도 제가 버리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되는데요.’라는 식으로 말하게 돼요.

그들은 남편이 자신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며 불쌍한 남편을 버릴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경우의 핵심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자신이 남편을 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함으로써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2> 책에서는 이런 여자들의 자존심 지키기를 ‘정체성 게임’으로 묘사하며 그들에게 ‘아직 보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억압이 계속되면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거기에 저항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킬 거라는 마르크스의 예측이 틀렸던 것처럼, 억압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거기에 저항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해버려서 더 일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모순의 덫에 걸린 엄마들





문제는 엄마들이 억압에 적응하는 순간 시작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자기가 어떤 사람 때문에 계속 피해자가 되는 자체가 실은 피해·가해 구조를 존속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전통적인 성규범을 따르기 싫어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전통을 따른다. 그런데 그들의 의식이 변하는 순간, 그들이 전통을 받아들이는 순간, 피해자였던 여자는 가해자로 변한다.
전통에 순응하기를 선택한 어머니는 딸에게 두 가지 모순되는 기대를 한다. 속으로는 자신처럼 구속받으며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딸이 실제로 자유롭게 행동했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의 사회적 성공을 바라면서 동시에 좋은 남자에게 선택받길 바란다는 것. 책에서는 이 모순상태를 “여자가 돼라!”는 것과, “여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두 가지 상반되는 메시지를 양쪽에서 동시에 보내고 있는 셈이라고 묘사한다. 그로 인해 딸 세대는 한 가지 딜레마에 처한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성공하는지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라는 것.





울타리 바깥의 복지를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연대하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노력부족이나 잘못된 선택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도 소위 ‘성공한 여자들’은 그렇지 못한 여자들을 무시하곤 한다.

어설픈 선택지가 존재하는 탓에, 지혜와 능력을 가진 여자가 그런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는 데가 아니라, 다른 여자들을 따돌리는 데 사용해요. 이런 세상에서 페미니즘이 성립할 리가 없는 거죠.

저자는 이런 현상을 ‘신자유주의의 함정’이라고 일컫는다.
결혼은 평생 한 사람에게 자신의 신체 사용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괜찮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높은 이혼율 지표를 보거나 불륜 문제로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모든 복지제도가 이성 간 결혼을 전제하고 있는 오늘날의 복지제도에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가족 부양이 최고’라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며 이렇게 대담을 끝맺는다.

세대 간의 상부상조가 아니라, ‘세대 내의 상부상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혈연과 가족을 초월한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결혼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의 복지를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5232142 )


결혼제국

저자 우에노 치즈코, 노부타 사요코 출판 이매진 발매 2008.11.24.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29호(2019.08)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